엄마랑 싸움만 하던 나, 처음으로 엄마와 '대화'를 했다

2024.7.14 일요일,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 되었기에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나는 삼남매중 첫째딸이다, 엄마에게는 오빠들이 있지만 집안에서 장녀역할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 나에게 여자로서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한다던가 누나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등의 사고를 주입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딸일 뿐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빠의 유전자를 조금 더 많이 타고난 딸이었다.. 엄마를 잘 도와주는 착한 딸이고 싶었지만 엄마의 장녀콤플렉스 사상과 자유분방한 나의 기질은 항상 정면충돌했다. 엄마와 나는 언제고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기회만 노리며 눈에 불을켜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 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게되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더 많아졌고 엄마랑 싸우는 횟수는 더 늘어났다.

 

엄마가 너무도 지긋지긋했다...

사춘기 시절 엄마는 입만열면 잔소리와 구박(엄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런적 없다고 하지만 나에겐 선명하다), 본인의 인생에 대한 불평불만, 돈 필요하다는 이야기, 아빠에 대한 불만 등등.. 일방적인 소통만 했고 내 입장, 내 이야기, 내 감정에 대한 얘기는 전혀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20대가 되고 엄마를 이해하고 대화해보려는 시도를 안해본 것은 아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마련해 주고, 같이 여행도 가보고, 필요한것이 있으면 다 사주고, 엄마의 끝나지 않는 불평불만을 들어주며 감정쓰레기통이 되어보기도 했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 엄마와 나의 싸움은 딸과 엄마의 애증관계에서 비롯된 마찰을 뛰어넘어 온 가족의 정서를 해치는 불안요소가 되어버렸다.

 

결국 아빠가 엄마를 데리고 따로 살고 나는 막내동생과 살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면서 불면증과 불안장애, 우울증이 찾아오고 애정결핍, 의존증 등의 증상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나는 그 모든것이 엄마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싸우지는 않아도 방치만 하는 아빠도 한 몫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나는 점점 엄마와의 연락을 피하고 집에도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연락하는 횟수도 점점 더 줄어들고 나는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나를 고립시키고 심리상담과 병원도 다니고 자기계발, 인간관계, 철학, 심리학에 관한 영상과 책을 접하면서 나는 인생 대격변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우울증치료를 시작한지 2년이 넘은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내 집에 오겠다고 연락을 해 왔다, 평소 같았으면 휴대폰에 엄마 이름이 뜨자마자 불안증세를 보이며 꺼버렸을건데 이날은 그냥 받았다. 직접담근 청을 전해주고 바로 가겠다던 엄마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새벽 4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어린시절 엄마에게 느꼈던 분노와 억울한 감정들, 트라우마 내 눈에 비춰졌던 엄마의 모습들을 덤덤한 목소리로 별일아니라는 듯이 털어놓고 엄마는 그걸 듣고 본인의 상황이 이래저래 했다며 차근히 얘기를 해주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다소 어이없고 신기한 일이었다.

엄마는 가방끈이 짧고 부엌떼기로 자라서 사실상 지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항상 대학을 나오고 자신의 커리어를 가진 친구들의 엄마들을 동경하고 친근하게 지냈다. 내 엄마와의 지적인 대화는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내가하는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다니...!? 자신이 했던 행동을 인정하고 본인이 깨달은 것을 말해주다니..?!
놀라울 뿐이었고..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고 생각과 행동이 변하는 동안 엄마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그래서 서로 공감할 수 있었던거같다. 

한번의 대화로 엄마가 갑자기 좋아졌다거나 자주 만나서 교류를 늘리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다.

 

인터넷에 엄마와의 불화로 고민하는 영상이나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공감이 되고,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학 관련 책이나 정보들을 보면 엄마와 딸이 서로를 투사하고 동일시하는 방어기제는 위험하기 때문에 역시 거리를 두는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하는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 확실히 변한것은 엄마의 말을 조금 더 이해하고 엄마의 감정표현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고, 엄마와의 대화중 적절히 선을 그어 내 감정이 다치거나 폭발하지 않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엄마 얼굴을 보면 확실히 주름도 많아지고 나이가 든것이 보인다, 나도 언젠간 공허로 돌아가겠지만 만약 엄빠가 먼저 갔을 때 후회할 일들보다는 추억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떠올리고싶다. 이번에 엄마와 나눈 진정한 '대화'가 앞으로 만들어갈 좋은 기억들을 위한 신호탄이라고 여기고싶다.